조선비즈
이종현 기자
2023년 9월 22일
이탈리아 작곡가 비발디의 협주곡 ‘사계’는 18세기의 아름다운 자연을 표현한 곡이다. 그렇다면 심각한 기후위기를 겪고 난 미래의 ‘사계’를 음악으로 표현하면 어떤 곡이 나올까.
2050년 대전의 기후 예측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발디의 사계를 재창작한 ‘사계 2050-대전’ 공연이 22일 저녁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전 본원 대강당에서 열린다.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씨가 프로젝트 예술감독과 솔리스트를 맡아 40인조 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
‘사계 2050′은 글로벌 디지털 디자인 기업인 아카(AKQA)가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글로벌 프로젝트다. 2021년부터 지금까지 6개 대륙, 14개 도시에서 공연을 진행했다.
이번에는 앞선 무대와 달리 KAIST의 기술력으로 새롭게 구성한 곡을 연주한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석사과정 방하연·김용현씨가 각각 데이터 기반 음악 작·편곡, 알고리즘 개발 및 인공지능 기술 활용을 맡았다. 박사과정 남궁민상씨는 미래 기후변화 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작곡가 장지현씨도 프로젝트를 도왔다.
이들이 사용한 2050년 기후 예측 데이터에 따르면, 대전은 1년 중 44.2%에 달하는 161.5일 동안 여름이 이어진다. 최고기온은 지금의 섭씨 37.1도에서 39.5도로 높아지고, 폭염일수는 28.9일에서 47.5일까지 증가한다.
연구팀은 비발디의 ‘사계’에 계절마다 소네트(정형시)가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를 이용해 2050년 대전의 ‘사계’ 중 여름에 ‘무자비한 여름 태양 아래, 대전의 시민과 나무들 모두 시든다; 나무들은 갈라지고 있다’ ' 그의 지친 몸은 생물다양성의 붕괴로 강화된 벌레와 말벌 떼로 고통받고, 번개와 요란한 천둥으로 두려워 휴식을 찾지 못한다’를 넣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계 2050-대전’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불규칙하며 혼란스러운 분위기의 곡으로 완성됐다. 생물다양성이 감소해 ‘봄’의 새소리로 표현된 부분이 대폭 줄어들었다. 기후변화로 길어진 ‘여름’은 원곡보다 길이를 늘여 훨씬 느린 호흡으로 진행된다. 동시에 극심해진 이상기후로 변덕스러워지는 날씨를 강조하기 위해 몰아치는 폭풍우를 그려낸 악장을 훨씬 강렬하게 표현했다.
‘겨울’은 2023년에 비해 11일 짧아지는 결과를 반영해 기존 곡에서 쉬어가는 부분들을 생략해 길이를 줄였고, 옥타브를 빠르고 급격하게 넘나드는 편곡으로 삼한사온보다 잦은 빈도로 반복되는 극심한 추위를 묘사했다.
프로젝트를 총괄한 방하연 학생은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상호 작용을 통해 창조된 음악 작품은 예술가와 첨단 기술의 공존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날 공연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KAIST 홈페이지에서 오후 2시까지 사전 예매할 수 있고, 오후 6시 반부터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티켓을 배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