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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년 서울, 탄소 배출량 따라 열대야 ‘69일 vs 40일’

서울&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2021년 10월 20일

탄소량 5배 늘면 지구는 재앙적 피해
AI가 재작곡한 2050년 미래 사‘ 계’에선
상하이 ‘새소리 없는 침수된 도시’ 표현
감축 노력하면 무섭지만 파멸은 면해
마나베 박사 1969년 기후모델 개발
대기-해양-토양 시스템으로 예측
이후 열역학, 상태 방정식도 포괄
“변화 노력하면 미래 변화” 시그널 제시

인공지능(AI)이 비발디의 ‘사계’를 재작곡했다. 안토니오 비발디가 살던 1725년 이탈리아의 사계절 대신 학자들이 기후모델로 예측한 2050년 서울의 기후 데이터가 AI에 입력됐다. 그 곡을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씨와 서울시향 부악장 웨인 린이 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했다.



이들이 참여한 ‘불확실한 사계’ 프로젝트는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릴 11월1일엔 서울뿐 아니라 독일·케냐 등지에서 ‘2050년 사계’ 연주가 24시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그 중 한 곡을 아홉 살 난 딸한테 들려줬다. ‘봄’ 제1악장이다.



“와, 이거 내가 아는 음악이다. 어? 근데,이상해. 처음에 밝게 시작하는 건 똑같은데, 그러다가 뭔가 달라지는데. 응? 뭐가 빠진 거 같은데?”



프로젝트 기획사 AKQA 누리집에서 정보를 찾아봤다. 중국 상하이의 ‘2050년 사계’ 악보가 올라와 있었다. 비발디 시대에 지저귀던 새소리 음표가 모두 지워졌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최고 수준으로 증가하면 저지대 도시는 2050년까지 물에 잠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동영상 인터뷰에서 AKQA의 데이터과학자 신재현 수석은 ‘접합 대순환 모델 비교 프로젝트5’(CMIP5)로 2050년 기후를 예측했다고 밝혔다. CMIP5는 ‘전 지구 기후모델’ 여러 개의 미래 예측 결과를 종합한 것이다.



그렇다면 기후모델은 어떻게 미래 기후를 예측할 수 있는 걸까?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마나베 슈쿠로가 최초로 만들어낸 기후모델은 여러 후대 과학자들에 의해 발전을 거듭하여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수십 개의 기후모델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가 지난 6월 펴낸 책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도서출판블랙피쉬)에서 기후모델의 개념과 원리를 설명한 것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기후모델은 거대하고 매우 복잡한 수십만 줄의 컴퓨터 코드 덩어리다. 열역학 법칙,운동 방정식, 상태 방정식 따위가 모조리 코딩돼 있다.”



1969년 마나베와 동료들이 개발한 최초의 기후모델은 대기-해양-토양 시스템으로 구성돼 있었다. 여기에 계속 여러 연구자가 살을 붙였다. 해빙, 식물, 토양, 심지어 바닷속 식물성 플랑크톤까지 코드 덩어리 속에 구현됐다. 그래서 이제 학자들은 기후모델 대신 ‘지구 시스템 모델’이라고 부른다.



기후모델은 지구를 잘게 나누어 수만 개의 상자 형태로 만든다. 그리고 그 각각의 상자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호작용을 계산한다. 인간에 의한 온실가스 증가도 여기 포함된다. 이때 미래의 온실가스 증가 정도는 일종의 ‘가상 시나리오’ 형태로 기후모델에 입력된다.



그러다 보니 여러 문제가 생긴다. 김 교수는 “가장 유명하지만 가장 문제가 많은 시나리오는 RCP 8.5”라고 지적했다. 이 시나리오는 쉽게 말하자면 지금보다 화석연료 사용량이 5배 늘어난 미래다.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 그리고 매우 느린 기술 발전을 가정했기 때문이다.



RCP 8.5에 따르면 2100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 대비 5도가 오르게 된다. 많은 정부 보고서와 언론이 ‘우리가 지금처럼 살아갈 때 닥쳐올 미래’라고 묘사할 때 쓰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김 교수는 “RCP8.5는 최근 과학자들 사이에서 너무 과장된 시나리오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RCP 2.6은 이미 실현 가능성이 낮아졌다. 2005년부터 감축 노력을 했을 경우를 전제로 짠 시나리오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2100년 지구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도 상승하는 데 그친다. 하지만 지난 8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평가보고서는 지난해 전 지구 지표면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이미 1.09도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김 교수는 “인류가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마주하게 될 미래의 기후는 RCP 4.5”라고 제시했다. 기후위기에 대응은 하지만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을 때를 가정한 시나리오다. 여기서 예측한 기온 상승치는 2100년까지 3도다. 김 교수는 “(이 정도면) 문명이 파괴되는 수준은 아니다”라면서도 “여전히무서운 결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CP 4.5 시나리오에서 서울 기후는 어떨까. 2100년 연평균 기온 예측치는 15.6도.2020년(13.2도)보다 2.4도 높아진다. 폭염일수는 올해 18일이었던 것이 2100년엔 56일로 는다. 열대야도 연 21일에서 40.2일로 는다. 그래도 RCP 8.5 시나리오에서처럼 두세달가량 폭염(74.2일)과 열대야(68.5일)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이러한 기후모델에도 한계가 있다. 데이터의 한계다. 신 수석은 “예측은 과거 우리의 역사와 측정값을 기반으로 한다”며 “지금부터 10년간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면 그에 따라 수집된 데이터 역시 달라질 것이고 예측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 발간된 IPCC 제6차 평가보고서는 우리가 현재 마주하는 기후위기가 인간이 초래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며“우리가 지구의 과거를 우리 손으로 바꾸어놓았듯, 앞으로 10년 동안 온실가스 등 입력데이터를 바꿔낸다면 인공지능이 앞으로 작곡할 ‘불확실한 사계’ 변주도 다른 음악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50년, 만 37살이 될 내 딸이 들을 ‘불확실한 사계’는 혹시 비발디의 원래 악보로 돌아가 있지 않을까? 김 교수의 표현처럼 인류가 ‘화석연료 대소동’을 앞으로 10년 안에 무사히 끝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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