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이하영 기자
2022년 9월 17일
가볍게 산책하며 문화생활을 누리기 좋은 가을을 맞아 전국에서 각종 공연·전시 행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올해는 인공지능(AI)이 도입된 행사가 잇달아 열려 관심이 쏠린다. 과거 수학·과학 등 이공계 분야가 주 영역으로 여겨졌던 인공지능이 예술계까지 성큼 들어온 모습이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는 지난 15일부터 오는 29일까지 해석하거나 번역하기 어려운 시인의 세계를 인공지능을 통해 깊이 들여다보는 ‘잘 알아듣지 못했어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 전시가 열린다. 한국의 아방가르드 문학가 이상의 시와 네덜란드의 초현실주의 시인 폴 반 오스타이옌의 시에서 추출한 텍스트 데이터를 양국의 젊은 예술가 두 명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재구성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전시에서는 두 시인의 작품을 인공지능이 학습해 두 시인이 대화하는 형태로 보여준다. 인공지능은 한국어, 더치어(네덜란드어), 영어를 오가는 번역 알고리즘을 통해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두 시인의 대화를 완성한다. 대화의 내용은 한국어와 더치어가 번갈아 가며 표현된다. 또한 시 본문에 문자, 도형 등의 그림 형식 배열 구체시를 쓴 두 시인의 작품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이를 대형 스크린에 이미지화하는 전시도 있다.
오는 17일 국립광주과학관에서도 인공지능 문화 확산을 위해 ‘인공지능 융합 콘서트’라는 흥미로운 공연이 펼쳐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지능 작곡가 이봄(EvoM)이 작곡한 곡과 사람이 만든 클래식 곡을 각각 연주해 어떤 곡이 인공지능이 만든 곡인지 맞춰보는 콘서트다.
오는 30일 서울 강동아트센터에서는 인공지능이 기후변화 데이터를 근거로 편곡한 비발디의 사계 2050년판이 공연된다. 클래식 음악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나타내기 위한 글로벌 프로젝트인 ‘사계 2050, 잃어버린 계절’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과 사계 프로젝트 오케스트라가 협연한다.
인공지능이 상상한 2050년 버전 사계는 뚜렷한 사계절의 변화가 담긴 비발디의 사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계절을 알리는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가 사라지고 황폐하고 음울한 불협화음으로 곡을 이끌어 나간다. 숫자로 보내는 경고 대신 음악으로 시민들에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는 시간이 될 전망이다.